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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쾌락'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보통은 즐겁고 신나는 감정이지만, 뭔가 그 정도가 지나쳐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담겨있는 감정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철학자는 자신의 학파를 세운 후에 '쾌락주의'를 설파합니다. 고상한 철학과 거의 문란함을 떠올리는 쾌락의 만남. 역설적이긴 하지만 그의 철학엔 삶을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고대 철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창시자, 에피쿠로스의 이야기입니다.

 

오는 사람 안 막았던 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 경에 사모스라는 이름의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매우 똑똑했다고 합니다. 14살에 어떤 책에서 '혼돈'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당시의 선생님은 에피쿠로스에게 혼돈의 개념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런 선생님을 보고 '그냥 내가 스스로 공부해야지' 라는 마음을 가졌나봅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에피쿠로스는 철학에 대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합니다. 성인이 되어 그는 한 철학서적을 읽게 되는데, 그 책을 읽고 나서 본격적으로 철학자의 면모를 가지게 됩니다. 그 책은 원자론을 주장한 데모크리토스의 책이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이후 아테네에서 사람들을 모아서 자신의 사상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 때의 에피쿠로스는 30대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제자의 배경이 매우 다양했다는 점입니다. 시대가 고대이다보니 계급 간의 대우도 많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차별도 상당했을 겁니다. 그런데 에피쿠로스는 배경과 계급을 가리지 않고 어린 아이나 여자, 심지어는 매춘부(창녀)도 받아들여서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에피쿠로스를 매우 비웃었다고 합니다. 배울 자격도 없는 사람을 가르치고 있다는 그런 생각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도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제자들을 열심히 교육시켰습니다. 또한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가르쳤기 때문에 당시의 제자들은 에피쿠로스를 많이 따랐다고 합니다. 높은 사람이라고 제자들을 하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들과 허물없고 친근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에피쿠로스를 비웃었던 많은 사람들은 이런 친밀한 제자와의 관계를 맺는 그를 보고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메인 테마, 쾌락주의

서두에서 쾌락에 대한 작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쾌락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에피쿠로스는 그런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고 설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극단적인 쾌락은 인간에게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해서 얼마큼의 쾌락을 추구해야 하는지 잘 생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쾌감과 불쾌감을 알아서 잘 판단하고 조절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쾌락이라는 단어 자체의 어감 때문에 받아들이는데 다소 거북할 수 있지만, 저는 '풍요'나 '안정감'이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쾌락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 개념 때문입니다. 

 

에피쿠로스는 육체적 쾌락과 영혼적 쾌락을 나누어서 생각했습니다. 육체적 쾌락이란 육체의 감각에서 오는 쾌락으로 볼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살면서 육체가 필요로 하는 욕구 혹은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 육체적 쾌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기분 좋음이 아니라 필요로 의해서 채우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음식을 통해서 배고픔을 없애려 하거나, 운동을 통해서 건강함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육체적 쾌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 쾌락 중에서도 '육체의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추구하였는데, 이것을 '아포니아'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적 안정감의 극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혼적 쾌락은 육체적 쾌락과 비슷하게 욕구 혹은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지만, 에피쿠로스는 욕망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상태를 추구했습니다. 이것을 '아타락시아'라고 불렀습니다. 마음과 만물의 이해가 충족되어야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에피쿠로스의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에피쿠로스 학파 소속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를 추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매우 뛰어난 신체를 가진 운동선수 만큼은 아니겠지만 적당히 건강을 유지하면서 무병장수의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또한 살면서 마음의 행복이 지속되기를 추구합니다. 별탈 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고싶을 것입니다. 도전과 성취감을 즐기고자 하는 삶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건강과 무병장수라는 아포니아와, 행복한 마음이라는 아타락시아를 추구하며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쾌락주의하면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릅니다. 뭐든 지나친 것은 좋을 게 없다는 뜻입니다. 너무 욕심내서 과하게 하지 말고, 스스로 적당한 정도를 찾아서 그만큼의 충족을 추구하면 그것이 에피쿠로스 학파의 쾌락주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니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했던 '중용'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우리의 사회는 '다다익선'을 추구하지만, '과유불급'을 마음 속으로 되새기며 자신에게 알맞은 아포니아와 아타락시아를 찾아가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의식하지 않으셨겠지만, 이미 여러분은 유명한 철학자들과 비슷한 사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철학자들의 제자입니다.

 

중용을 추구하며 아포니아와 아타락시아를 찾아가는 여러분은 이미 진정한 철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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