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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고대 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소크라테스입니다. 대중적으로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굉장히 유명합니다. 끊임없이 파고드는 질문을 통해 무지를 깨닫게 하는 산파술은 소크라테스에게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직접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의 제자 플라톤의 기록을 통해서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널리 퍼지게 되었고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 당돌하게 도전장을 던진 소피스트가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트라시마코스입니다.
강한 말투로 소크라테스를 비판하다
트라시마코스는 플라톤의 저서 <국가론>에 등장하는 소피스트입니다. 소크라테스와 어떤 악연이 있었는지는 설명되지 않지만, 소크라테스와의 토론을 할 때 아주 강한 어투로 소크라테스에게 비판의 말을 던집니다.
"만일 네가 정말로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질문이 답변보다 쉽다는 점 뒤에 숨어 단순히 질문만 하고, 남이 주는 답을 반박만 하며 청중을 기만하는 것 이상을 해야 할 것이다. 너의 답변을 해라, 그리고 네가 무엇을 정의라 이름내리는지 말해라."
- <국가론> 플라톤 저.
질문을 통해서 깊은 사유를 유도하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질문만 던질 뿐, 어떠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비판을 한 내용입니다. 대부분의 철학자는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철학을 명확하게 설명할 줄 압니다. 자기만의 답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나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던 철학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철학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소크라테스는 설명하는 철학자가 아닌 질문하는 철학자였고, 자신의 사상을 후대에 펼치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게끔 유도하는 철학자였던 것 같습니다.
트라시마코스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비꼬는 말투로 비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게 소크라테스만의 지혜지. 아무도 가르치기 싫어하면서, 감사의 말 하나조차도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모두에게 배우는 거."
- <국가론> 플라톤 저.
기록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이지만, 트라시마코스는 소크라테스와 논쟁을 할 때 이처럼 공격적인 말투로 논쟁을 펼쳤다고 합니다. 고대 당시에도 위대한 철학자로 불리웠을 소크라테스에게 이와 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호전적이었던 인물이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소크라테스를 비판하는 트라시마코스는 과연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그만의 독특한 정의(justice)에 대한 철학이 하나 있습니다.
강자에 의한 정의와 법
트라시마코스는 정의(justice)란 "강자 혹은 권력자에 의해 만들어진 기준에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만 보면 트라시마코스는 근현대의 전체주의자나 파시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보다는 왜 트라시마코스가 이런 생각을 했는지 그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보면서 그의 철학을 곱씹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먼저, 트라시마코스가 싫어하는(?)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법과 정의에 대해서 먼저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정의에 대해서 "절대적인 선이고, 인류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되며, 어떠한 처벌도 인간에게 해를 가한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정의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법은 인류의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트라시마코스는 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사고의 방향이 소크라테스와 반대였던 것입니다. 법은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법을 만드는 사람은 보통 사회적으로 권력이 있거나 기득권에 위치한 사람들입니다. 기득권층에 의해 만들어지는 법이고 법을 따르는 것이 정의라면, 트라시마코스가 말하는 정의는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트라시마코스의 생각은 소크라테스의 도덕으로부터 생겨나는 법에 대한 논리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도덕'이라는 관념 혹은 가치라는 것에 대해서 소크라테스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래 내용은 소크라테스에게 정의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는 내용의 일부입니다.
"정말로 양치기와 목동들이 그들의 양과 소들을 위해서 행동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이 노예의 소유자들과 그들 자신이 아닌 그 너머의 무언가를 위해 가축들을 살찌우고 돌봐준다고 생각하는가. 도시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그들이 국민을 보는 시각이 우리가 양떼를 보는 시각과 다르며, 그들이 자신들에게 가장 큰 이익이 가는 일들만이 아닌 그 너머의 무언가를 생각하느라 낮과 밤을 지새운다고 생각하는가."
- <국가론> 플라톤 저.
가축을 돌보는 양치기와 목동은 순전히 가축들을 위해서 일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누군가와의 계약 관계가 있을 수 있고, 있다면 양치기와 목동보다는 상류 계층의 사람일 것입니다. 계약 관계가 있다면 그 계약 관계에서 오는 양치기와 목동의 이익이 있기 때문에 가축을 돌보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계약 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양치기와 목동은 자신의 안전이나 이익을 위해서 가축을 돌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축들은 양치기와 목동의 돌봄에 의해서 통제를 받게되고 그 말을 따르게 됩니다. 양치기와 목동을 '기득권', 가축을 '국민 혹은 서민'으로 바꿔서 생각해본다면 결국 다수가 따르는 정의와 법은 기득권의 안전과 이익을 위하는 것이 됩니다. 따르는 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트라시마코스의 정의에 대한 철학을 살펴보면 상술하였듯 파시즘처럼 기득권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득권의 이익에 편중된 정의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꼭 소크라테스를 비판하기만을 위해서 말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의 사회가 고대 봉건사회가 주류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트라시마코스는 독재나 기득권을 위한 정의가 아니라 다수의 국민에 의해 그들의 이익이 실현되는 법과 정의가 이뤄지기를 추구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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